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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8.22.(화)

권진아의 음악을 들으며 오래간만에 일기를 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일기를 쓰고, 노래를 듣고, 혼자만의 생각을 하고, 일상적인 풍경이 흐르는.

물론 마음 속의 일들은 복잡하지만.

언젠간 잠잠해질 마음이니깐.

꼬인 마음은 언젠가 풀릴테니깐.

유려한 마음을 갖고 싶다.

미운 시선과 뾰족한 마음으로는 무엇도 되지 않는다.

무엇도 되지 않는 마음으로는 동그란 무엇도 할 수 없으니깐.

반성과 억울함이 공존하고. 아픈 마음도 있고. 애잔한 마음도 있고. 미안하면서도 화가 나고.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무엇이라고 말하게 되는 건 아닌지.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자는 말. 다시 되돌아보기.

 

*

인간관계는 시소게임이나 스파링 같아서, 체급의 차이가 크면 게임을 계속할 수 없다. 한두 번은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져줄 수 있겠지만, 배려하는 쪽도 받는 쪽도 금방 지칠뿐이다. 인간관계를 지속하는 요건으로 ‘착함’을 드는 사람에게 그건 지속 가능하지도 않고 건강할 수도 없다고, 예전 내 모습이었던 착한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어느 한쪽이 착해야만 유지되는 관계라면, 그 관계는 사실 없어도 상관없는 ‘시시한’ 것 아닐까? 건강한 인간관계는 시소를 타듯 서로를 배려하며 영향을 주고받을 때 맺어진다.
---「인간관계는 시소게임과 같다」중에서

건강한 인간관계는 시소를 타듯 서로를 배려하며 영향을 주고받을 때 맺어진다. 지속가능한 건강한 관계. 그건 뭘까?

더 이상 착하려고도 하지 말고, 그냥 나는 나. 상대방은 상대방. 피해주지 않고, 이해할 수 있는 건 이해하되, 나의 선을 이야기하는 것.

하지만 감정적으로 표현하지 말고, 그냥 그 것만 전달할 것. 그리고 감정은 다른 것. 감정적으로 움직이지 말자. 

여긴 일터고, 일터 안에서 우리는 일을 하고, 관계는 또 다른 이야기.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는 사람들의 이상한 말에 분명히 대처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무례한 사람들은 내가 가만히 있는 것에 용기를 얻어 다음에도 비슷한 행동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삶에서 만나는 다음 사람들에게도 용인 받은(그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행동을 반복했다. 또한 나는 그런 말에 대응하지 않음으로써 패배감을 쌓아갔고, 그렇게 모인 좌절감은 나보다 약자를 만났을 때 터져 나오기도 했다. 갑질의 낙수 효과다.
---「갑질은 계속된다, 멈추라고 하지 않으면」중에서

대응하지 않는 것이 현명할 떄도 있지만, 정확한 선을 알려주는 것이 어쩌면 더 현명한 것도 있다.

하지만 언어는 긍정적 언어로 이야기하기.

이렇게 하지 말라가 아니라, 이렇게 하면 좋겠다는 나의 입장 전달하기.


상처받은 사람들, 사랑받지 못한 사람들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상처를 다독이며 산다. 얼핏 다 나은 것 같아 보여도 통증은 불현듯 찾아온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우리가 만나는 많은 이들은 마음의 지옥을 견뎌내는 생존자들인 것이다. 이들은 이전으로 돌아가기를 두려워하지만, 지금 여기서도 영원한 이방인으로 떠돌아다닌다.
---「저마다의 상처를 다독이며 산다」중에서

상처받은 사람, 그리고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 나일까?

불현듯 찾아오는 통증이 있지만 이 또한 나다.

사랑이 고픈 기분이 오래 지속될 땐 아프기도 하다. 그런데 그 사랑은 그저 받는 사랑이 아닌, 내가 사랑하던 대상에 대한 공허함과 사랑하는 눈짓과 손짓에 대한 공허함이기도 하다. 그럴때가 더 많다. 받는 사랑에 대한 것은 우울감으로 찾아오고 순간적으로 강하게 작용하지만, 그 후자는 내게 오랜 공허함을 준다. 그리운 대상들이 많아지는게 아프고, 또 쓰다가 생각해보면 그리운 대상은 내게 사랑을 준 존재들이기에 그리고 사랑을 나눈 존재이기에 감사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 존재들이 내게 주는 의미가 너무나도 커서, 앓던 이가 빠진 그 자리라 하더라도 내겐 그 빈 자리가 공허하다. 보고싶은 사람. 또는 보고있어도 보고싶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 그들과 나누는 따스함과 보드라움이 그립다.


무례한 발언을 자주 해서 나에게 상처 주는 사람이 집안의 어른이나 직장 상사인 경우라면 현실적으로 화를 내기가 어렵다. 이들은 좋은 의도로 조언을 하느라 그러는 것이기에 정색하기도 뭐하다. 그렇다고 참고만 있기에는 스트레스가 너무 크다. 서로 상처받지 않고 대화를 종결하는 데 필요한 자기만의 언어를 준비해두어야 한다. 나는 그런 상황에서 주로 두 개의 문장을 사용한다. 바로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와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다.
---「부정적인 말에 압도당하지 않는 습관」중에서

외워둬야지.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와 그건 제가 해볼까요? 라는 말.

왜인지.. 나를 어지럽게 하는 일이 생각나지만, 그건 던져두고 비워두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며 조금은 투명해진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조금 나을까? 내 일이 아니고, 나는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사람. 그렇게 나의 자리를 정해볼까? 그래야겠다. 이 일은 내 일이 아니고, 나는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내 일이 아니고,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사람. 내 일이 아니고,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사람.


회사의 명함을 자신과 동일시하다 보면 훗날 자신을 지켜주던 명함이 사라졌을 때 황망해진다. 회사나 회사 사람 들에게 너무 큰 가치를 부여하고 너무 많은 것을 바라선 안 된다. 회사가 자기계발도 시켜주고 영혼의 단짝도 찾아주는 좋은 곳이라면 애초에 월급을 줄 리가 없지 않은가. 세상 대부분의 것이 그러하듯이 모든 관계는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질 때 유지될 수 있다. 회사가 나를 책임지지 않고 회사에서의 관계가 일시적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일로써 만난 사람들에게 갑질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
---「회사에서 멘토를 찾지 말 것」중에서

 


성희롱을 당했을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내가 예민한 사람인 거겠지’, ‘그분은 그럴 사람이 아니야’ 하는 생각을 멈추는 것이다. 아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제지하거나 불쾌감을 표현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다 보면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그냥 두고 피해받은 자신을 책망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두 번째로 할 일은 웃지 않는 것이다. 정색하면서 거부하기가 힘들더라도 최소한 웃지는 말아야 한다. 많은 여성은 성희롱을 당했을 때 순간적으로 너무 당황해 웃어버리곤 한다. 거절할 때조차도 너무 단호하게 들릴까 봐 머쓱하게 웃는다. 카카오톡 등 SNS에서 성희롱적인 말을 들었을 때도, 성희롱했던 사람이 카톡을 보내와 이에 답장을 할 때도 ‘ㅎㅎ’ 같은 표현을 하는 일이 많다. 가해자는 이를 악용한다. 상대도 자신에게 호감이 있다고 생각했다거나 적극적인 거부의 의사를 알리지 않았다는 증거로 쓰는 것이다.-「네가 예민한 게 아니야」중에서

단호할 땐 단호하게.

 

 

**

다행히도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하니 아무 일 없던 것이 되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있지만, 세상은 모두 내 마음대로 흘러가는 건 아니기 때문에.

흘러가는 것 안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지.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지. 적당한 것을 해야지.

그 이상의 에너지와 사랑과 정성은 내가 더 소중해지는 곳에 사용해야지.

사랑하는 사람과 더 연락을 많이 해야겠다. 그 소중함을 부쩍 느낀다.

 

 

사람은 모든 질문에 대답하지 않아도 된단다. 모든 것에 대답하려고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잃어버린단다. 자기 자신을.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마스다 미리.

 

피하고 싶은 상황을 만나더라도 기죽지 말자. 매일 조금씩 단호하고도 우아하게 거절하는 연습을 해보는 거다. 거절에 필요한 자신만의 언어를 사용하다 보면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일일이 상처받지 않는다.' '상대방 페이스에 휘말리지 않는다.'라는 두 가지 원칙만 생각하자. 애정 없는 비판에 일일이 상처받지 말자. 단점은 장점보다 쉽게 보이고, 비판을 하면 스스로 우월감을 느껴 애정 없이 습관적으로 비판을 하게 된다. 상처 덜 받고 자존감 높게 살고 싶지만, 그게 가능했던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모두 비슷한 고민들을 하는 듯 하다. 마음의 근육을 키우자. 마음의 근육을 키우면 우울함이 찾아와도 빠르게 나아질 수 있는 회복력을 얻게 된다. 이 회복력은 자존감을 갖는 것이다. 나의 과정을 모두 아는 사람은 나뿐이며, 자신을 신뢰하는 사람은 남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려 할 때마다 나는 이렇게 다짐한다. '사람들이 말하게 두고, 나는 나의 일을 하러 가자.' 모든 관계는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질 때 유지될 수 있다. 회사가 나를 책임지지 않고, 회사에서의 관계가 일시적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일로써 만난 사람들에게 갑질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 지나치게 헌신하다가 배신감에 울 필요도 없다. 회사의 명함 말고도 나를 설명해 줄 이를 밖에서 자꾸 찾고, 회사 동료가 아니어도 나와 놀아줄 사람을 찾아 나서라. 회사에 대해서 약간 체념한 채로 일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 

누군가에게 자꾸 뼈 있는 말을 하게 되고, 뼈 있는 말을 하고 나서 후회하는 사람이라면 잠시 거리 두기를 바란다. 그간 섭섭함을 느꼈던 부분을 차분히 정리해보면 감정의 온도가 떨어지게 된다. 

 

***

 

감정의 온도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고개를 조금 돌리면 보이는 사람들을 사랑하며.

내 시간을 아껴 쓰며.